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네딕토 16세 (문단 편집) ==== [[2013년]] [[콘클라베]] ==== 후임 교황으로 누가 선출될지 여부에 대해 세간의 관심은 최초의 [[흑인]] 교황이나 최초의 [[남아메리카]] 출신 교황의 선출 여부에 쏠렸다. 사실 베네딕토 16세가 선출될 당시에도 비[[유럽]]권 교황에 대한 강한 여론이 있었기 때문에 비유럽권 교황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관측도 있었다. 또 베네딕토 16세가 선출 당시부터 이미 고령이었고 결국 악화된 건강문제로 퇴위한다는 점에서 고령 후보는 기피하고 상대적으로 연소한 60~70대 후보가 각광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흑인]] 출신 교황 유력 후보로는 피터 코드워 아피아 턱슨(65세)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과 프랜시스 아린제(80세) 추기경이 거론되었지만, 추기경단의 지지여부가 변수이며 아린제 추기경은 여든이라는 고령이 걸림돌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비유럽권 교황 후보로는 [[캐나다]] [[퀘벡]] 출신의 마르크 웰레(68세) 교황성 주교성 장관이 거론되었다. 2013년 3월 4일, [[바티칸]]에서 [[추기경]]단 전체회의가 시작되었다.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단 수석 추기경이 주재하는 이 회의에서 [[콘클라베]] 일정이 결정될 예정인데, 소다노 추기경은 "투표권을 가진 추기경들이 모두 모이기 전까지는 콘클라베 일정을 정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현지 언론들에서는 3월 11일 정도에 콘클라베가 시작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모두 있는 115명의 추기경 전원이 참석한 추기경단 전체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보수파와 개혁파 사이의 갈등과 불화가 심해졌다.''' 개혁성향이 강한 [[미국]] 추기경단과 35년 만에 [[이탈리아인]] 교황의 등장을 바라는 [[이탈리아]] 추기경들의 갈등이 표면화 된 것. 특히 차기 교황을 유럽인으로 할 것인지 비유럽인으로 할 것인지를 놓고도 파벌이 갈려[* 공식적으로 밝혀진 이야기는 아니지만 베네딕토 16세가 선출될 당시에도 유럽권의 베네딕토 16세(당시 라칭거 추기경)와 비유럽권 후보를 두고 계속 표가 갈리다가 베네딕토 16세가 신승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졌다. 그 비유럽권 후보가 프랜시스 아린제 추기경으로 알려졌는데, 2013년 콘클라베와 관련해서 영국 가디언지는 그 비유럽권 후보가 [[프란치스코(교황)|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라고 보도했다.] [[http://news.donga.com/3/all/20130308/53542860/1|콘클라베 시작일이 밀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전임 교황께서는 이런 꼴을 보기 싫어서 퇴임한 걸지도.~~ 미국 추기경단들은 가톨릭 교회의 발목을 잡고 있는 미성년자 성폭행 문제에 대해서 "새 교황은 성폭행을 한 사제들을 가톨릭교회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폈다. 새 교황이 어떤 이름을 선택할지의 여부에도 관심이 쏠렸다. 전임 교황과의 연계라는 차원에서는 베네딕토 17세, 진보와 개혁성향의 교황이라는 차원에서 요한 24세, 사회정의 차원의 교황이라면 레오 14세, 가톨릭교회의 전통을 수호하는 차원의 교황이라면 비오 13세, 서민적 풍모의 교황이라면 요한 바오로 3세 등등의 가능성이 나왔다. 대체로 베네딕토 17세나 요한 바오로 3세가 제일 유력할 것으로 관측되었지만 오히려 차별성을 두기 위해 [[바오로 6세]]가 그랬듯이 수백 년 동안[* [[바오로 6세]] 즉위 당시 [[바오로]]의 이름은 300년 이상이나 묻혀 있었다.] 채택되지 않았던 이름을 택할지도 모른다는 등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콘클라베]]는 3월 12일부터 시작되었다. 당초 15일에서 19일까지 밀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나, [[성지(동음이의어)#s-3|주님수난 성지주일]]을 코앞에 두고 콘클라베를 하기가 부담스럽다는 데 추기경들의 의견이 일치한 듯했다. 당시 유력한 후보로 유럽권에서는 밀라노 대주교를 겸한 안젤로 스콜라 추기경[* 재미있게 ~~역사와 전통의 교황 배출지~~ 베네치아 총대주교를 10년 동안 지냈다.], 비유럽권에서는 [[브라질]] 출신으로 미국 갤버스톤-휴스턴 대주교를 겸한 오딜로 페드로 스체레르 추기경이 거론되었다. 스콜라 추기경은 [[이탈리아]] 출신이지만 개혁적 성향을 지닌 인물로 알려져 [[미국]]과 [[독일]]권 추기경들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교황청]]과의 교류가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교황청의 주류 추기경들의 지지를 받을지 불투명한 약점이 있었다. 반면 스체레르 추기경은 교황청 주류 추기경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장점이 있었으며, 중간 이름이 '''페드로'''(베드로)라 말라키의 환시를 믿는 오컬트 마니아들은 그가 교황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파일:external/www.abc.net.au/4571992-3x2-700x467.jpg|width=100%]] || [[파일:external/www.eonline.com/reg_634.smoke.ls.31313.jpg|width=100%]] || ||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교황)|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 2007년 1월 13일 || [[2013년]] [[3월 13일]] 오후 7시 6분 || 그런데 막상 교황으로 뽑힌 이는 전혀 유력 후보로 거론되지 않았던 [[프란치스코(교황)|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프란치스코 교황)]]이었다. 그래도 [[예수회]] 출신으로 교리면에서는 원칙주의자이며 교황청 내의 비기득권층인 비 이탈리아인이라는 점, 교황명으로 청빈한 삶을 산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름을 딴 점 등으로 보아 개혁파의 입지가 강해지리라는 전망이 있었으며, 실제로도 화려했던 전통을 중시했던 베네딕토 16세와 차별화된 소박한 행보로 눈길을 끌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